티스토리 툴바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에 대한 궁금증은 영화를 보는 커다란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내밀한 사생활인 타자들의 정사에 대한 관음쾌락은 빼 놓을 수 없는 요소다. 실생활에서 몰래 타자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것은 불법적이지만, 극장에서 편한히 앉아 에로틱한 정사신을 관람하는 것은 합법이다.

관객들이 영화에서 그러한 정사신을 볼 수 있는 경우는 멜로 드라마, 하드코어 포르노그래피 그리고 소프트코어로 대별할 수 있다. 멜로 드라마에는 적나라한 노출은 없다. 물론 멜로 드라마에도 꽤 수위 높은 노출씬들이 있긴 하다.

양조위와 탕 웨이의 <색, 계>나 얼마전 <섹스 앤 더 시티>에서도 성기 노출은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 어디까지나 극진행을 위한 것이라는 변명이 따라 붙는다. 인기 스타들의 성기노출은 심심찮게 화제거리를 만들며 마켓팅에 큰 몫을 한다.

반대로 하드코어는 보여줄 것은 모두 다 보여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합법적으로 하드코어를 볼 수는 없다. 극장에는 걸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하드코어는 일시적인 성적 흥분만이 있을 뿐, 환상을 꿈꾸는 주체가 되고 싶은 관객의 욕망을 채우 주지는 못한다.

오로지 포르노 배우만이 욕망의 주체가 되고 관객은 대상으로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서 감독들은 그 위험하고 아슬 아슬한 경계선을 넘나들며 자신의 작품이 어엿하게 극장에 걸려 예술작품으로 대우받으면서도 관객들에게 은밀한 사생활을 최대한 보여주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영화 <섹스 이즈 코메디>
소프트코어적인 영화에 집착하는 대표적인 감독으로는 카트린 브레이야를 들 수 있다. 여류 감독인 카트린 브레이야는 여성들의 성적 탐닉에 대한 욕망을 특유의 여성적 시각으로 양극단을 교묘하게 오가며 <지옥의 체험>(2004), <섹스 이즈 코메디>(2002), <팻걸>(2002), <로망스>(1999) 등을 연출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오랫동안 남성들의 전유물 같았던 포르노그래피적인 시선을 여성의 것으로 바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소프트코어의 대부 같은 존재 틴토 브라스 감독은 철저하게 남성적 시각에서 프로노그래피를 소화해 낸다. 남성관객들을 끊임없이 유혹하는 <모넬라>시리즈, <두 잇>시리즈, <훔쳐보기>(1994), 칼리귤라(1980) 등을 통하여 이 노감독은 오랫동안 여성의 엉덩이와 가슴에 유별난 집착을 보이며 천착해 왔다.

틴토 브라스는 아예 대놓고 남성들의 관음쾌락을 충족시키는 사명감으로 영화를 만든다. 그러나 이 역시 포르노그래피와 별반 다르지 않아 관객들은 배설의 쾌감외에는 채워지지 않는 허전한 욕망을 느껴야 한다.

<정사>(2001)를 연출한 파트리스 쉐로 감독은 프르노그래피적인 시선을 남성과 여성의 것, 중간에 두고 있다.  제51회 베를린국제영화제(2001) 금곰상과 여우주연상 수상작이기도 한 <정사>는 상영시간 2시간 중 35분이 넘는 시간이 섹스씬으로 채워졌다.

스크린을 통하여 좀처럼 볼 수 없는 남자의 성기 노출, 오럴 섹스 등이 여과없이 보여진다. <내 책상 위의 천사>, <쉘로우 그레이브> 등의 영화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 보인 케리 폭스는 이 영화 <정사>에서 전례없는 과감한 전라 노출 연기로 베를린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사실 성기 노출의 정도로만 보면 남자 배우 마크 라이언스한테 남우주연상을 주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영국 작가 하니프 쿠레이시(Hanif Kureishi)의 반자전적 단편 ‘나이트 라이프’를 각색한 영화 <정사>는 섹스에 대한 사십대 남자와 여자의 시선을 절묘하게 교차해 나가며 양성(兩性)의 균형잡힌 접점을 찾아 간다. <정사>의 남자 주인공 '제이'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집을 나와 혼자 산다.

불친절하게도 파트리스 쉐로 감독은 제이가 집을 나온 배경을 직접화법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단지 제이가 아내와 함께 살때, 잠옷을 입고 자는 아내를 보고 섹스를 할려다 멈칫하며 화장실로 가 자위행위를 하다 아들이 들어와 멈추는 장면을 보여줄 뿐이다.


연극배우 지망생인 '클레어'는 수요일 마다 지저분한 제이의 지하실 방으로 찾아가 거의 말이 없는 섹스만을 하고 온다. 지하실 바닥에서 섹스를 하는 제이와 클레어를 보면 산야에서 교미를 하는 짐승들이 떠올려지기도 할 만큼 파트리스 쉐로 감독은 그들의 섹스씬을 원초적인 질감으로 그려낸다.

클레어가 왜 수요일 오후 2시마다 찾아가고 왜 둘은 대화없는 섹스를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파트리스 쉐로 감독은 할 생각이 없다. 제이가 거리에서 만난 수다스런 여자와 섹스를 하다, 그만 그 수다스러움이 역겨워 뛰쳐 나오는 장면만 보여 줄 뿐이다.

배경을 전혀 모르는 두 남녀가 만나 섹스를 하는 장면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떠 올리게 한다. <정사>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여성에 의해 주도적으로 이루어지는 부킹문화가 보편화된 시대에서 '여자는 사랑없이는 섹스를 하지 못한다'라는 상식이 넌세스임을 잘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어째튼, 제이의 지하실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폴의 아파트는 두 남녀의 본능적 충동(id)이 만나고 판타지가 이루어지는 꿈같은 기능을 한다. 그러므로 그런 공간은 흔히 소품없이 그려진다.

폴과 잔느가 아무 소품도 없는 아파트에서 사랑을 나누었던 것 처럼 제이와 클레어도 섹스를 한다. 폴이 잔느의 익명성을 벗기려고 그녀를 따라 가다 총을 맞아 죽었듯이 제이도 잔느의 실체를 아는 순간 둘은 헤어지고 만다.


바텐더 일을 하는 제이에게는 바텐더 후배 '알렉스'가 있었고, 클레어에게는 그녀로부터 연기지도를 받는 '베티'가 있었다. 알렉스와 베티는 제이와 클레어의 얼터 에고 역할을 하며, 제이와 클레어의 관계를 지속하게 해주기에는 너무 나약해 보인다.

영화는 남녀가 오르지 육체만을 통해서도 소통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수요일 마다 오던 클레어가 오지 않자 제이가 초조하게 기다리는 시퀀스와 둘이 만나 격렬하게 벌이는 정사신은 인간이 만든 언어 없이도 인간은 소통할 수 있음을 빼어난 영상미로 잘 보여준다.

클레어를 사랑하게 된 제이는 클레어의 익명성이 벗겨지는 순간 그녀를 떠나게 된다. 택시 드라이버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라는 클레어의 실체는 제이가 받아 들이기 어려운 현실이 되고 만다.

생물학적으로 수컷인 제이는 본능적으로 암컷을 오롯이 전유할 수 있을 때에만 클레어를 받아들일 수 있다. 제이가 그녀를 전유하고 있다고 믿었던 '수요일'마저도 다른 수컷에 의하여 공유되고 있다는 실체를 대면하는 순간, 제이는 가족을 말없이 떠났듯이 떠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클레어는 수요일에 오지 못한 "사정"이 있었다고 말한다. 제이에게 수요일은 유일하게 클레어를 암컷으로 만나는 시간이자 그녀를 볼 수 있는 전부의 시간이기도 하다. 남자인 제이는 클레어보다 보다 본능적 충동에 충실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클레어에게 수요일은 사회적 질서 안에서의 수요일일 뿐이다. 클레어는 남편을 떠나 사회적 질서 아래에서 성적 본능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서 다른 수컷을 만나는 날로 수요일을 택했을 뿐이다. 사회적 질서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클레어는 얼마든지 자신의 본능을 포기할 수 있고, 그것은 곧 제이의 본능도 포기될 수 밖에 없음을 뜻한다.

 남여관계에 있어서 상대를 전유(全有)하는 시간과 공간은 매우 중요하다. 암수가 서로 전유하는 시간이 갈 수록 줄어들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이혼율이 급격이 상승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회적 틀 안에서 존재하며 일탈의 대상으로서만 제이를 만나 온 클레어에게는 수컷의 본능들은 얼마든지 제이가 아니더라도 사회적 질서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의식한다. 사회적 틀 혹은 질서에 비하여 제이의 그녀를 향한 욕망은 클레어에게는 유의미한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째튼 '베티'는 자기 자신이 혼자 죽었었다고 클레어에게 말한다. 그리고 클레어가 죽을땐 자기가 옆에 있어 주겠다고 말한다. 창녀에 관한 문서라는 어원을 가진 프르노그래피는 <정사>에서 남녀의 시선으로 다시 한번 정의되며 성적 담론의 장을 활보한다.

영화정보
원제 Intimacy, Intimite, 2001
장르
드라마(성인영화) | 프랑스, 영국, 독일, 스페인 | 119분 | 2003.10.31(재개봉) | 18세 관람가 -> 제한상영가
감독 파트리스 쉐로
배우 마크 라이런스, 케리 폭스, 티모시 스펄, 어라스테어 걸브레이쓰, 필리페 칼바리오.

Posted by 팔러스